벨기에(당시엔 플랑드르) 중부지역 루뱅에서 시계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캉탱 마시스(1466~1530)는 일찍이 공예기술을 배웠으나 화가의 딸과 사랑에 빠진 뒤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주로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렸으며, 평소 알고 지내던 에라스무스의「우신예찬」에 등장하는 어리석고 기괴한 인물들을 소재로 그로테스크한 주제를 선호한 플랑드르의 대표화가다.
진주가 매달리고 루비가 박힌 금장 배지를 붙인 빨간 두건을 쓰고 코걸이 검은 안경을 단정하게 내려 쓴 채 오른쪽 볼엔 근육 골이 선명할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어 매우 야무진 모습을 보이고, 왼손으론 동전을 세고 오른손으로는 장부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 전형적인 고위급 세금징수원의 모습과는 달리 뒤쪽 여닫이 출입문이 열려 있는 걸 봐서는 방금 전 실내로 들어온 것 같다.
더구나 오른팔을 징수원의 왼 어깨에 걸친 채 집게손가락으로 아래를 비아냥거리듯 가리키면서 징세업무를 성실히 수행해서 자신보다 직위가 높아진 동료 징수원의 업무수행 자세를 불만스럽게 비하하는 표정과 행동이 매우 대비되는 작품이다.
녹색 벨벳이 깔린 테이블엔 금화, 은화를 비롯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진주와 루비, 사파이어들이 놓여있는 모습에서 화가가 활동했던 벨기에의 중심인 안트베르펜은 16세기 초 이미 자본주의가 도입돼 상업거래가 번창하였으며, 이 도시가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작품에 숨겨진 재미있는 부분은 뒤쪽 선반 위에 있는 검은색 종이장식이 마치 선글라스 같은 착시를 주는데다 선반 왼쪽에 매달려 있는 벌려진 가위의 두 원형 손잡이 부분도 마치 작은 둥글이 안경을 연상시킬 듯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실제 안경을 포함한 세 형상이 정삼각형을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화가의 대표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환전상인 남자 앞에는 금화가 수북이 쌓여 있는데, 가짜 금화가 섞여 있는지를 진지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남편의 이런 작업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부인의 왼손에는 성 모자상 그림이 그려진 기도서가 펼쳐져 있다.
금화는 탐욕에 대한 상징인데 반해 기도서는 종교적인 신앙심을 나타내는 증표였기에 이 그림은 탐욕에 대한 경계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엔 ‘고리대금업자, 세금징수원, 방앗간 주인, 그리고 환전상은 루시퍼(타락한 천사)의 4전도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환전상을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따라서 당시의 화가들은 이런 주제의 작품을 즐겨 그렸다.
이 초상화 작품은 책상 위에 펼쳐진 성경 위에 코걸이 안경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에서 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던 중 자세를 위해 잠시 안경을 벗고 포즈를 취하는 진실한 기독교 남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1517년 북유럽지역에서 마르틴 루터가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며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을 주창, 신교세력이 확산되던 당시에 그려진 작품이기에 성경과 안경의 조합이 특히 유의미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뒤 배경에 건물의 두 아치(arch)가 만들어 내는 공간이 마치 동글이 안경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속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어 16세기 초 안경업계 홍보용 자료로 그려진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