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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띠 해가 가고 뱀의 해가 왔다. 예부터 하루의 계획은 아침(在朝)에 있고, 건너뛰어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데는 재춘(在春)에 있다고 한다.
보내고 맞는다는 생각의 힘은 능력의 원천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바탕이 깨끗한 후에야 그림이 될 수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사실 신구(新舊)의 계주(繼走)는 인간이 획정(劃定)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놓고 그것에 메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통념(通念)인 것이다. 타임머신(Time-machine)을 타고 6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남산길 초입에 당시는 보기 드물게 ‘네온’으로 불을 밝힌 ‘Neon-light’라는 뮤직카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국은행 옆 12층 상업은행 건물이 서울에서 가장 높았다.
명동입구 지하도에 서있기만 해도 인파에 저절로 밀려 내무부(구 신안공사 자리) 앞까지 가게 된다.
크리스마스 날의 진풍경이었다. 맥주, 양주 메뉴 간판만 훔쳐보다 어느새 살던 집 입구인 돈암동 전차 종점에 와 있었다.
파란 카바이트 불을 밝히는 포장마차가 도회에서 밀려난 측은한 마음을 유혹한다. 막소주에 참새구이다. 야금야금 삭은 뼈 씹는 맛과 함께 어릴 적 광주리덫으로 참새를 잡던 생각이 더해 어느새 포장마차에 단골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이변이 생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잔 걸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삐약거리는 소리가 난다. 주인을 밀치고보니 노란 병아리였다.
그 후 포장마차와 발을 끊었다.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자존감이 상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생성된다. 그 첫째가 자부심이다.
자부심이란 나는 뭔가 주어진 일을 차질 없이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능력이고, 이어서 두 번째는 내가 지금까지 옆길을 보지 않고 걸어 온 올곧은 정신으로 나의 직업에 충실했다는 감사함이다. 이처럼 자존감은 감사의 밭에서 자란 것이다.
직업은 사회적 존재를 확립시켜준다. 안경사의 위상은 사회적으로 제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안경사는 정신을 손끝에 모은 훌륭한 장인이다.
또한 안경사는 신용을 생명으로 한다. 신용이란 현재의 행위에 미루어 앞으로의 약속이며, 의무를 이행할 것으로 믿음도 갖는 것이다. 이처럼 신용은 신망을 쌓고 인망(人望)으로 발전하게 된다.
신용의 ’콘텐츠‘는 안경제품의 조립, 조작의 기술이다. 섬세한 솜씨로 빚어내는 명품을 손님에게 끼워드릴 때 고객의 미소 속에 단골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바람직한 시대적 안경사의 상(像)은 기능,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안경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새해를 맞는 각오는 편안함만 쫓으면서 안일(安逸)의 인습에 따르지 않았는지 차분히 자문(自問)해 보는 것도 역사적 마디(節)가 새롭게 연결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