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59년, 테이트모던 미술관, 런던. 지난 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진 스탠리 스펜서(Stanley Spencer, 1891~1959)는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존재로 템즈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버크셔주의 쿠컴에서 태어났다.
이렇다 할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삽화집이나 동화책, 종교서적 등을 통해 상상력을 키웠고, 특히 윌리엄 터너와 루벤스 같은 대가들의 복사품을 보며 미술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고 한다.
그 결과 자신만의 매우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회화세계를 형성해, 딱히 어느 장르로 분류하기가 매우 어려운 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전쟁, 가정, 노동, 종교 그리고 성(性)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했으며, 특히 종교화 부분에서는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최후의 만찬’ ‘십자가 처형’ ‘부활’ 등 전형적인 기독교 주제들을 그렸는데, 기존 종교화와는 달리 마치 현대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했다.
[프리스와 스펜서(안경착용)의 결혼식 사진] 사진 맨 좌측은 도로시 헵워스(프리스의 동성애인)세 사람은 영국 최고의 미술과 디자인학교인 Slade School of Fine Art 출신 화가들로, 프리스와 도로시는 졸업 후 스튜디오를 함께 쓰면서 파리에서 4년간 생활한 후 1925년에 런던으로 돌아와 1927년 쿠컴에 정착했다.
양성애자인 프리스는 1932년 경 스펜서를 만났고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는 그의 모델로 지냈다.
이후 1937년 스펜서가 전처 힐다(딸 두 명을 낳음)와 이혼하고 일주일 만에 도로시와 동성애를 즐기던 프리스와 매우 기이한 결혼 생활을 시작해, 1959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22년간 이어갔다.
[패트리샤 프리스가 있는 자화상] 1936년, 캔버스에 유채, 피츠윌리엄 미술관, 케임브리지, 영국.어릴 적부터 눈이 나빠 안경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매우 불편했던 스펜서는 자화상을 그릴 때는 반드시 안경을 낀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36년부터 37년 사이, 양성애자인 두 번째 부인과의 비극적 사랑을 너무나도 슬프게 보여주는 2점의 ‘2인 누드 초상화’ 중 한 작품이다.
사랑이라는 격렬한 행위를 하기엔 매우 불편한 안경을 낀 채, 체온이 매우 낮을 때 표시되는 짙은 녹색으로 채색된 상체에다, 시선마저 안경 너머 딴 곳으로 보내고 있는 화가 자신과, 침대 위에서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오른팔에 머리를 누인 채 뭔가 불만에 가득 쌓인 눈빛으로 입술마저 꽉 다문 2번째 부인 프리스의 모습에서, 중년부부의 뜨거운 만족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그림이다.
이 작품제목을 보면 처음엔 매우 생뚱맞다는 의구심이 들지만 평소 스펜서는 자신을 ‘프리스의 몸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는 개미와 같다’고 칭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비극적 사랑의 부부 자화상이 아닐까싶다.
[클라이드 강 위의 조선소] 연작 중 일부. 제2차세계대전 동안 스펜서는 공식 전쟁예술가로 일하며 스코틀랜드 스콧 리스고 조선소의 문화개선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곳에서 보고 겪었던 경험들을 토대로 그렸는데, 이 작품이 그를 영국의 20세기 유명화가의 반열에 올려준 <조선소 작업 현장 연작작품들>(1947~50)이다.
훗날 그는 ‘스콧 리스고 조선소의 많은 구석들이 내 어린 시절의 방과 흡사해 나를 감동시켰다’라고 회상했다고 한다.
참고로 해당 조선소는 1974년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건조한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기 위해 설계도면을 빌려왔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