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와 달이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사람은 먼저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곳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비좁은 인간관계와 자의식의 밀실에서 벗어날 때 삶의 테두리는 확장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가령 오늘날 의사소통을 실제 의사소통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만드는 ‘의사소통의 시뮬라시옹의 모델’이라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는 지식기반 사회로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 전래로 내려 온 버려야 할 잔재(殘滓)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노파심을 피력해 보면, 『한국의 비극』의 저자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 교수는 한국의 비극의 까닭으로 한국 사람들이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양반생활을 들었는데, 양반생활이란 일을 하지 않고 책이나 읽으며 편히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인에게 노동이란 그 자체의 가치나 보람을 생각하기보다는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일하는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첫째 비극이고, 또 한가지는 한국은 오랜 역사를 두고 외침을 자주 받아 그런지 뭐든 잘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스스로의 책임을 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왜 아프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나 결코 운명에 기대어 자신의 노력을 포기하는 세속적 팔자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 다수다. 요즈음 모든 소통의 문화는 인터넷 문화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문화에 대한 접근방식을 변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득 고개 들어 지하철 옆자리를 쳐다보니 모두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른바 유행중독물 등이 이 스마트폰을 통해 유통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선배들의 조언, 어른들의 경험을 귀담아 들으려 하기 보다는 인터넷 포털이나 지식검색을 두드려 답을 얻으려 할 뿐이다.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언어가 있는가 하면 우격다짐의 운동권 말투가 날을 세우기도 한다. 순리의 언어가 설 자리가 없게 됐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언어의 혼란은 정신세계의 파탄을 의미한다. 기표와 기의의 간극이 좁은 언어가 사회적 신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틈새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지정학적 전략이 우리도 알고 너희들도 아는 것, 우리 땅은 요지이며 요부, 나아가 동북아의 허브이다. 다만 ‘천행건(天行建), 군자이(君子以) 자강불식(自强不息)’의 힘은 쉬임없이 키워 나가야 하는 지상 명제만 있을 뿐!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