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저녁달은 대한팔경 중 하나일 정도로 명소다. 달 뜨지 않는 수평선 너머 낙조가 바다 위에 황금빛을 뿌리며 서서히 지고 있었다. 1894년 갑오년에 동학민란이 일어나자 조선 제일의 거부이자 탐관오리(貪官汚吏)인 민영휘(閔泳徽)는 재빨리 청나라 원세개(袁世凱)에게 파병을 요청했고, 천진조약에 따라 조선에 일본군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같은 해에 갑오경장(甲午更張)도 단행했다.
철학자 키케로(BC106~43)는 역사가의 계명에서 첫째, 감히 허위를 말해선 안 되고 둘째, 진실을 억압해서도 안되며 셋째, 편견(partiaty)과 악(malice)을 행할 마음, 적의 원한이나 범의(犯意)와 협의가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위는 무엇이든 기술하지 말고 진실은 무엇이든 기술하는 것이 역사의 제1법칙이라고 했다.
말띠해이니 말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백마를 탄 왕자님보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호언(豪言)한 나폴레옹(1769~1821)이 남대서양의 고도 센티 헬레나에 유폐되어 52세로 죽기전까지 전략가로, 황제로 백마를 탄 인간 영웅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삼국지 관운장의 적토마(赤兎馬)가 있는가 하면, 경마장에서 뜻밖에 경쟁상대가 되는 다크호스(DarkHorse)도 있다.
그런데 금년의 말빛깔이 청마란다. 청노새는 봤지만 푸른 색깔의 말은 보지 못했다. 그저 오방색(五方色)을 갖추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馬)에 대한 말(言)이 있다. 제자백가시대 공손룡(孔孫龍)이 말한 백마비마(白馬非馬)가 바로 그것이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왜? 색상이 본질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궤변(詭辯)은 일찍이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들의 언변에 한 동안 취한 적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말 종류에는 덩치 큰 군마(軍馬)가 있는가 하면 복마(卜馬) 즉 일하는 말도 있다. 그 밖에 노역에는 힘센 노새도 있고, 무엇보다도 돌밭을 잘 타는 당나귀도 있다. 암말과 수당나귀 사이에서 난 노새는 힘은 세서 좋으나 경사 심한 길에는 적합지 않다. 과거에는 길마 양쪽에 초롱 두 개를 싣고 철따라 찾아오는 서슬(두부 만들 때 쓰이는 간수) 장수가 반갑기도 하거니와 험한 길을 지고 온 나귀에게 여물이라도 한 삼태기 안겨주곤 했다. 낯선 이에게는 목청 터져라 짖어대던 누렁이도 여물 씹는 나귀 곁에 다가가 꼬리를 흔든다.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아 보기가 흐뭇하다.
우리나라의 지평에서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밖에 없다. 제주도는 초원이 펼쳐져 말이 뛰놀기 좋다. 이른바 게리 쿠퍼가 권총을 차고 말을 타면 서부극이 될 정도다. 그것은 드넓은 평원이 있기 때문이다.
정초에는 자기 검문을 할 때이다. 안경사는 법인의 일원이다. 법인(法人)은 자연인이 아니면서 법에 의하여 권리 능력이 부여되는 단체를 말한다.
꿈, 신념,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꿈은 자기를 구하고 시대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처럼 말의 힘은 먼 길을 달려봐야 안다고 했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