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잘난 사람의 표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인사를 말한다. 이 가운데 언(言)은 말을 칭한다. 언사(言辭)의 수사법, 기교, 수단 따위가 능숙하게 적절히 말하는 사람을 가르킨다.
언어는 문화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주류사회가 쓰는 서울말로 정했다. 88년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로 했다.
언어에는 문어체와 구어체가 있다. 구어체는 대개 한글로 되어 있고 문어체는 한글자가 대부분이다.
한자는 음(音)과 훈(訓)이 있지만 일본어와 달리 음으로만 읽는다.
한자를 취음(取音)으로 쓰는데 헷갈리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취음이란 뜻이나 철자를 고려하지 않고 음만 취하여 쓰는 일, 본래 한자어가 아닌 낱말을 음이 같거나 비슷한 한자로 적는 일, 예를 들어 생각을 生覺으로 각시를 閣氏로, 사돈을 査頓으로 수고를 受苦 따위다. 문제는 한자가 음과 함께 뜻도 비슷하다는데 있다. ‘수고와 생각이란 단어는 한자로는 없는데 受苦를 한글로 수고, 生覺을 생각으로 표기하지 않았나? 하는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겠나’ 하는 게 염려다.
방송에서도 모르고 잘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번 파로호(破虜湖)에 조그마한 거룻배를 텐마(傳馬船)라고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잠수부라고 해야 할 때 ‘머구리’라고 하는 건 자상히 알아보고 하지 않고 하는 언사다. 머구리란 경상도나 함경도 지방에서 개구리를 뜻하는데 물질하는 해녀를 가르키는 말이다.
삼천포항에 새벽 첫 출항하는 배는 지붕도 없는 자그마한 배에 해녀들 여럿이 올라 첫 출항의 문을 연다. 이름하여 머구리배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에는 일본어를 그대로 부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낱말도 있다.
덴깡(轉換)이 그것이다. 아이들이 발버둥치며 투정부릴 때 텐깡이라고 하는데 덴깡은 간질(癎疾)이다.
그리고 우리말이 좋은게 많은데, 누이동생을 여동생으로 오랩동생을 남동생으로 영남지방의 말들을 서울, 경기지역에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물음을 묻고, 감탄을 하며, 명령을 하고, 칭찬을 하며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지성인의 언어 사용이 기술적인 자원의 일차원적이라면 일상인은 총체적 사용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관심 대상은 종래의 언어관례가 아니라 영상언어다.
현대문화를 특징짓는 단어들 가운데 하나는 영상이다. 이 영상은 어떤 의미의 언어인가 문자만이 아니라 자연적 사실, 소리, 사진, 그림, 동영상들의 상황들이 모두 통사적 구조의 디지털(digital) 언어로 번역할 수 있고 정보통신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언어는 영상적(analogical)이지만 이것이 번역되는 심층언어는 디지털인 것이다. 이런 디지털의 성공은 이 시대를 영상시대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면서도 공기나 물처럼 보편적이고 편재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그동안 언어는 많은 경우 인간들이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인간을 억압해 왔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