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다. 눈으로 과거를 보고 거기서 얻은 교훈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데 익숙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우연히 한두 번 계속되고 나면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한두 번의 예측에서 성공하여 선견지명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게 된다.
법인(法人)은 자연인이 아니면서 법에 의하여 권리•능력이 부여되는 단체를 말한다. 조직 또한 글자 그대로 공식적으로 설립된 사회집합 또는 사회적 단위다. 3대째 누린 협회장은 웅변으로 제왕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웅변은 자신에게도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말을 결들인 웅변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웅변가를 신뢰하게 만든다. 웅변은 지혜처럼 보이고 달콤한 말은 친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단독법과 공약의 ‘애드밸룬(ad balloon)’을 띄우고 군중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 속, 안개 속을 응시케 한다. 공정한 사회란 각자가 받기에 합당한 몫을 사용한다는 그런 마음씨 말이다. 매우 단선적이다.
재물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로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공정한 사회는 각자가 자리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회이다. 정의라는 것이 하나의 잣대가 없듯이 돈과 출세만이 잣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게 될 때 공정한 사회는 자연스럽게 오게 돼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과거는 확실하다. 시간의 흐름은 단선적이므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이고 과거는 이미 있었던 일이 된다. 과거는 미래에 못지않게 미지의 영역이다. 과거를 바라보는 눈,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사관이라 한다.
사관과 역사의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사관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없앨 수도 없지만,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특정한 시대의 관점이 반영되므로 오히려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신뢰란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편적 규범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상호간의 기대이다. 시대가 급변해 간다고 해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본원적인 사명과 가치가 있다. 지식의 전문가가 우선이 아니라 건강한 지성 위의 선 지식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신화라면 그리스를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인 다이달로스는 손재주가 뛰어난 장인이다. 어쩌다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타섬의 미궁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탈출을 꿈꾸는 아들을 위해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날개를 만들어 준다. 깃털 날개를 양쪽 겨드랑이에 매달고 이카로스는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들뜬 마음에 높이 마구 올라간 이카로스는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떨어져 죽고 만다.
인간은 경쟁을 통해 진화해온 만큼 인간이 경쟁적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양에는 신화가 아닌 글에 항룡유회(抗龍有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