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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50명 한 반에서 45등을 했다. 새로 부임하신 대구사범을 나오셨다는 야스다(安田: 안전)선생님은 벽지나 다름없는 10개 동의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부임해 오신 후 도차우 아소비로 매일 지각만 계속하는 나에게 싸리나무 초달(楚撻)로 손바닥을 딱 세 번 때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는 역산이 세기 쉬어!’ 하신다.
거꾸로 다섯 번째로 공부를 잘했으니 선생님의 역산이 알기 쉽게 간단하다. ‘역산오등(逆算五等)’으로 별명 아닌 별명을 붙여 주셨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몰리면서 국민학교 아동들은 글공부보다 지원병 모집 도와주기•솔갱이 기름짜기•마초베기 •가마니 짜기 등 국민생들에게 버거운 일들을 떠맡기는 등 전시(戰時)때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6학년 때 해방이 되고 6•25가 터져 남으로 넘어왔다.
대구1육군병원에 있을 때 1957년 경 대구사범을 찾아가 보았다. 안전(安田)선생님의 용모와 발령지를 말하니 며칠 있다가 와보라는 것이다. 열흘이 넘었을까 육군 병원으로 누군가가 면회가 왔단다. 나가보니 안전 선생이시다. 감격이란 게 이런 것이다.
‘역산오등(逆算五等)!’ 안(安)선생님은 외관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감으로 계속 교단에 서고 계셨다. 요즘 나는 그때의 버릇이 되살아나서인지 역산을 곧잘 하고 있다. 앞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시간을 1년 단위로 삼아 살아 온 세월보다 앞으로 다가 올 시간을 재고 있다. 살아 온 세월보다 매우 적은 수지만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다.
더불어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뒤집어 보기’다. 인간관계에 있어 어떤 잘못된 일이 생기면 원인을 우선 나에게 돌려 찾아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잘못은 없는데 상대가 자꾸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때 우리는 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라는 안타까움을 흔히 보게 된다.
호주머니, 영어로 포켓(pocket)이라 하고 일본어로 긴짜꾸(巾着), 서부 경남에서는 게엄치, 평안도 방언으로는 넙치게라고도 한다.
이처럼 호주머니에 대한 언어가 지방마다 다른 것이 흥미롭다. 마음을 주머니처럼 뒤집어 보기가 안 된다는 막힘에 안타까워하지 말고 무슨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거꾸로 보는 것이 바로 뒤집어 보기라고 생각하면 간단한다.
에드워드 데보노의 수평적 사고와 유사한지 몰라도 복잡한 것은 간소하게 하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뒤집어 보기는 가슴 깊숙이 허허로움을 깔아 집착을 벗어 놓는 삶의 달관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 큰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