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디자이너②
순수 패션의 대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등등 패션 디자인계에서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브 생 로랑. “오랫동안 여행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서 옷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뒤로 하고 40년 디자인 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 시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세계 여성들에게 꿈과 우아함을 전해준 진정한 스타일리스트였다.
‘퀴뛰르의 황제’ 크리스챤 디올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의 뒤를 이어 21살의 나이에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 생로랑은 그의 능력을 인정한 디올의 조수로 일했던 것이 전부였지만, 이미 17세에 패션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디올社에서 첫 번째 히트작을 내놓은 것은 ‘트라페즈라인’ 이라는 실루엣으로써 당시 상류층과 언론에 큰 주목을 받았고, 1960년대에는 비트족에서 바이커족까지, 모피에서 악어가죽까지 전위적인 컬렉션 등 모든 것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60년에 군 입대로 자신의 자리를 M. 보앙에게 물려주고 패션계를 떠난 그는 62년 제대와 함께 파리에 이브 생 로랑이라는 오뜨 퀴뛰르를 오픈한 이후 1974년 남성복 분야에 진출하고, 마침내 1981년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상을 수상하였다.
이어서 메트로폴리탄 아트 뮤지엄 의상협회에서 생존하는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25년 회고전을 개최하는 영광을 가진 때가 1983년이었다.
그의 디자인 세계는 클래식 엘레강스에 기초를 두고 단순하면서도 지적인 우아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생로랑 시크(Saint Laurent chic), 또는 모던 트림(Modern trim), 슬림 앤드 트림 패션(Slim & trim fashion) 등으로 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