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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도 부산에서 80년도 초에 한문 고전을 배우고자하는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주역의 권위자이신 아산(亞山)선생의 주역 강의를 매주 금요일 밤 듣기로 했다. 비교적 부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조방 앞 후미진 2층에 강의실을 얻었다.
소문이 나서인지 각계각층의 장•노년층과 여성들도 많이 참석했다. 왕필(王弼)의 득의망상(得意忘象)이라는 교훈으로 상가치는 물리치고 공자계사전(孔子繫辭傳)을 주로 배우게 됐다.
아산선생의 열띤 강의에 못잖게 재미있었던 일은 수강을 끝내고 학우끼리 모여 소주 한잔 나누며 배운 것을 익히는 기탄(忌憚)없는 토론이라는 ‘뒤풀이’가 더욱 재미있었다.
어느덧 봄철에 시작한 청강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철까지 이어졌고, 아산선생께서 급서(急逝)하시게 됐다.
뜻있는 인사들이 장례식에 참례한 것은 물론이다. 다행히 선생의 자제되시는 분이 김천교육청 교육공무원으로 부친의 뒤를 이을만큼 한학에 조예(造詣)가 깊어 계속 주역 강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양철학이 자연에 대한 놀라움에서 비롯되었다면, 동양철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동양사회에서는 도덕적 인간관이 주류를 이루어왔다면, 서양에서는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관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동양사상은 모두 ‘역’의 논법에 따라 전개된다. 그것은 대치법(對峙法)과 배합법(配合法)의 논리다.
역(易)의 논리는 태극에서 음양으로 갈라져 나와서 대치되고, 음양이 다시 태극으로 돌아가 배합하는 논리다.
보건계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주역학회에 나오라니까 선뜻 응한다. 한 달포가 지났는데 멀리 전근이 되어 못나가게 됐다고 죄송해 하면서 이르기를 ‘자(子), 왈(曰)이 스승’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단다.
그리고 구결(口訣)을 붙이지 않고 배워서 더욱 좋았단다. 도올 선생도 한학 강의에서 옛날식으로 토(吐)를 붙이지 않는다. 스승! 공자는 인류의 스승이다.
엊그제 스승의 날이 지났다. 이정배 회장 일행이 석정(石晶) 강중화(康中華)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러 왔다. 기일(忌日)은 지났지만 스승의 날이 돼서 왔다고 했다.
석정이 안경업계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1907년 12월 4일 평남 강서 태생의 석정은 13세 때 도일(渡日), 동경 욱일광학공업사㈜에 입사하여 안경기술을 터득, 10년 만에 귀국하여 평양에서 ‘동양안경원’과 연마공장을 차려 렌즈 연마생산을 해오다가 6.25 피난지 부산에서 ‘광명당안경’을 인수하면서 안경인협회 구성에 앞장섰고, 후배 렌즈 연마공을 손수 가르쳐 안경렌즈 연마기술자들을 양성한 안경업계의 크나 큰 스승이시다.
자기 직업을 통하여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그 직업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완벽을 쫓는 장인정신을 함양해나가는 것이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아무튼 고(故) 석정 선생의 32주년 기일에 묘소 참배는 여느 때와 다른 의미의 스승의 발자취를 회고하는 뜻있는 참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