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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니 그때, 그 시절 그 사회에서 흔히 쓰였던 가족사나 사회사의 언어들이 현재는 폐어화된 것들이 많이 있다. ‘맏며느리’와 ‘큰애기’가 그것이다.
맏며느리는 현재도 있지만 대가족(大家族)시대와 핵가족(核家族) 때와는 그 내용이 다르다. 여기에 비해 ‘큰애기’는 큰 아이로 여길지언정 다 큰 처녀, 성숙한 아가씨로는 보지 않는다.
당시 유행가 가사에 ‘고무공장 큰애기 단봇짐을 싸누나’란 내용이 있었다. 여기에 단(單)은 단출함을 말하며 봇짐은 보따리를 일컫는다.
당시 보자기 재질은 검은 단색으로 물들인 무명천이거나 보다 너른 광목(廣木)천이었다. 그런 데 비해 요즈음의 보자기 감 소재는 폴리에스테르라는 화학섬유다.
값진 선물을 정결하게 담을 통(桶)과 상자의 화려한 무늬의 포장을 훼손시키지 않으며 운반에 간편을 돕는 데 쓰이는 것이 요즘 보자기의 쓰임새다.
두 세대 전만해도 맏며느리감은 무던해 보여야 했다. ‘무던하다’는 것은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씨로 덕정스러운 도량을 지닌 것을 말한다.
경로효친에 투철하며 공형애제(恭兄愛弟)하는 가정화목, 웃어른들의 말씀에 곡종(曲從)하며 손아래 시누이 동생들의 잘못된 일이 있더라도 에둘러 지적하는 조급(躁急)을 멈추고 성급(性急)을 피해가는 실로 무던한 마음씨를 지닌 며느리가 맏며느리다.
덕은 양의(兩意)적 의미가 있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덕과 득을 함께 보는 잘못 때문이다. 인덕이 없다는 말은 인복(福)이 없다는 말이다. 복이란 따지고 보면 우연을 가장해 주어진 것이다. 이에 비해 덕은 곧은 마음이란 뜻이다.
곧은 마음(直心), 가로 누우면 ‘四’위에 수술적인 힘을 높이는 화장을 한 후 마음먹고(心) 곳곳을 순찰하는 형태다.
덕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지만 수양을 쌓음으로써 체득할 수 있는 정신적인 품격이다. 이 품격을 갖춘 사람은 항상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고, 남의 어려운 사정에 동정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한다.
따라서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덕이란 남에게 호감을 살 수 있고, 남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족한 덕목 중에 하나가 진지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지하다는 것은 태도가 참되고 착실(着實:들뜨지 아니하고 거짓 없이 진실함)하면 사람의 지혜가 부족해 일이 잘못되는 것이 거의 없다.
늘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진지함이다. 진지하면 지혜가 생기게 되지만 진지하지 못하면 지혜가 흐려지게 된다.
우리가 예식장에서 사회자가 주례자를 소개할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덕망 높으신 주례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중 누구라도 그 자리에 서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