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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른을 받들어 섬긴다는 봉사(奉事)가 있는가 하면, 조상의 제사(祭祀)를 받들어 모신다는 이른바 사대봉사(四代奉祀)가 있고, 남의 뜻을 받들어 섬기며 타인을 위하여 자기를 돌보지 아니하고 노력하는 국가나 사회, 조직을 위하여 하는 헌신봉사가 있다.
혼자건 여럿이건 반대급부 없는 순수한 봉사활동을 고맙게 여기고 있다.
봉사활동에는 발기(發起)와 전이(轉移)라는 흐름이 있다.
첫째, 봉사대상에 대한 ‘관심’이고, 그 다음은 ‘애정’, 세 번째는 재미이며, 마지막은 성과에서 얻어지는 보람의 기쁨이다.
이러한 흐름의 봉사활동을 대내외적으로 하려면 의욕만으로는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하겠다.
봉사활동을 여러 번 하게 되면 어느덧 재미가 붙고 성과와 보람이 내적 충만으로 뿌듯하게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안경업계의 대내외적 봉사활동은 ‘안경계’나 기타 광학관계 뉴스지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직장 자리 비움의 손실을 과감히 떨치고 넘어서야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오히려 봉사시간을 일과에 넣는 관행적 직무수행의 패턴을 수립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름철 불어 닥친 ‘볼라벤’과 ‘덴빈’의 태풍으로 낙과된 과일을 주인과 함께 줍는 활동을 어찌 남의 일로 여기겠는가. 장애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할 시 머리 숙여 도움을 청할 때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행동은 ‘허리 굽힘’이라는 미국의 어느 자선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남을 위한 봉사나 어려운 이를 돕는 독지가는 그 사람이 그 사람, 하던 사람이 또 한다. 남을 돕는 일도 일종의 습벽(習癖)이 아닐까? 아니면 넓은 의미에서 나 개인은 언제나 우리 속에 있다는 존재감을 깊이 깨달은 달관의 경지에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부산 거주 안경업계의 원로 한 분이 업계 원로모임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 평균 수명 76세는 간신히 넘겼는데 최신 의료장비로 유명한 병원에서 속속들이 체크한 바 ‘pulmonory-ganglion’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세월 안경사법개정대책위원회에서 재무를 담당, 약속된 봉사금을 거두는 데 성실히 앞장서 일한 업계의 큰 공로가 있어 안경사 대상도 수상하고 지부 부회장도 역임한 분이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고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만 현실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극심한 경쟁과 효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그렇지만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으며(攸好德), 제명대로 세상을 살다가 갔으면(孝終命)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은 추구(芻狗)로 만든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어쩌면 인생의 정곡을 찌른 명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