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한 해가 저물녘, 법정단체로 출범한 안경사협회의 전국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임원수련대회가 충북 수안보온천에서 열렸다. 당시 ‘바리락스’ 대표라는 별명을 가진 배동진 총무이사가 필자에 건네 준 팸플릿은 회의진행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사실 우리는 민주훈련의 요식인 회의 절차를 숙지 못하고 있었다. 안경인협회 때 각 시도지부 회장 선출도 본회의가 있기 전 뜻있는 인사들이 어느 조용한 식당에 모여 이른바 사발돌리기로 사전에 회장을 지명하고, ‘내 능력이 될랑가?’ 하면 ‘우리가 밀어 줄텐데 뭘!’ 했다. 마지못해 승낙하지만 싫지만은 않아 2차까지 가서야 만취상태로 귀가시킨 예들이 드믄 일은 아니었다.
가뭄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술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던 지난 세월은 가고 ‘생산비, 인건비 제환 소득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 요즈음의 농심(農心)인 것처럼 안경사회도 옛날의 구두호천(口頭呼薦)으로 하는 임원 선출식은 ‘오! 옛날이여’다.
그렇다고 토론문화가 정착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이다. 토론이란 어떤 논제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논의하는 것을 말하며, 토론의 목적은 자신과 다른 주장을 가진 상태를 논리와 언변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의견 차이를 좁히는 토의(discussion)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꼭 유념해야 할 것은 상대의 말이 틀린 게 아니고 나와 다르다는 전제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지적, 이성적 사고에 의해 존재를 연구할 의무가 있다. 더욱이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식과 정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목표를 향한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한다. ‘안경테 의료용구화’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회원들의 잘못을 다시 반복해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무런 대안은? 있다! 점차적이고 점진적인 대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개토론회(Panel discussion)를 가져야 한다. 패널 디스커션은 토의하는 문제에 관해 보통 4~6명 가량의 대립되는 의견의 대물자가 청중 앞에서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안경테 생산자의 허가처는 어디이고, 의료기기 허가처는 어딘가? 현실적인 상황부터 알고 의견을 좁혀 가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굳이 한 자리에 모여 가부•찬반을 논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상(紙上)으로 토의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평범한 속인들은 그저 나쁜 소식은 빼고 좋은 소식만 들으려하며, 쓰라린 교훈은 잊어버리고 얻게 될 이익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당연히 좋은 것이라 여기고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는 좀 더 신중하여 전문가의 조언이나 비판적 평가를 받을 통로를 가로 막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