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로 할 때와 글을 쓸 때 그 표현을 달리한다. 이른바 구어체(口語體)와 문어체(文語體)가 바로 그것이다. 더위를 글로 쓸 때에는 혹서(酷暑), 극서(極暑), 혹열(酷熱), 혹염(酷炎) 등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말은 무더위, 뜨거운 날씨 등으로 하는 게 보통이다.
4계절 변화가 뚜렷한 온대성 기후인 우리나라에 비해 해양성 기후인 일본은 습기 찬 더위 무시아쯔이(蒸し暑い)처럼 후덥지근한 무더위가 많다. 삼복(三伏) 염천 아래서는 아무리 바쁜 농사일이라도 손을 놓아야 한다. 더위를 피하고 식히는 일은 고목 아래 부채질로 더위를 쫓느니보다 첨벙 냇물에 몸을 던지는 일이 최고다.
내 고향은 평북 구성이다. 경의선 지점인 정주에서 삭주 수풍댐 때문에 철로가 생긴 평북선의 중간지점, 고려의 문신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이 1018년에 거란군을 물리친 귀주대첩(龜州大捷)의 고장이다. 삭주에서 시작된 냇물이 구성골 동문천을 지나 동산면, 선흥동에 이르면 태천 서성면에 보내는 관계수로를 위한 큰 보(洑)가 설치되어 태천군과 동산면 사이를 흐르는 운천강이 구성 동산 용곡동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물이 퇴유령(退踰嶺)에서 합류, 대령강(大寧江)의 상류가 된다. 이 강은 청천강(淸川江)과 합쳐 서해로 들어간다. 속설에 의하면 청천강에는 물 한 바가지에 고기 한 바가지란 말이 있다. 새끼 시절에 바다에서 지내다가 이른 봄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가을까지 강에 사는 은어떼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구성에서 태천을 이르는 이른 바 신작로(新作路) 따라 태천으로 가는 길목에 파발(擺撥)이 있다. 이곳에서 넓고 깊은 골짜기가 용풍동(龍風洞)이다. 내가 태어난 상단마을까지는 5리는 족히 되고 소학교까지 5리길에서 10리길을 여덟살 때부터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신작로 따라 운천강이 흐르고 장마철이 지나면 뗏목도 뜬다. 아무리 추운겨울 두꺼운 얼음 이불을 덮고 있어도 마르지 않는 천혜의 강이다. 삼복철에는 너무 찌는 더위로 일손을 놓고 젊은 내외 댓쌍이 한 팀이 되어 뙤약볕이 내리 쬐는 강변에서 그늘 없는 미루나무 밑에 솥을 건다. 땀이 쏟아져 머리에 썼던 광목 수건은 어느새 흥건히 젖었다. 미깝은어를 잡는 훌치기낚시가 아니고 세발 그물, 굳이 무릎 넘치는 강안까지 들어갈 필요 없이 가장자리에 몇 순배 돌려 치면 새하얀 은빛 은어가 사발은 넘는다. 그물코에 걸린 은어를 입에 물면 파닥이며 수박향기를 뿜는다. 많이 잡아 뭐해 죽 끓일 만큼이면 족한걸! 소위 말하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은어죽이다. 이웃 가족끼리 모여 앉아 땀은 내려오고 은어죽 숟가락은 올라간다. 불포화 지방이 많아 보신용으로 좋고 진상품인 냇고기라서 명가(名價)는 높다. 하지만 훌치기낚시는 진정한 낚시를 한 게 아니다. 낚시는 취어비취어(取漁非取魚)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고향 천렵놀이는 여름을 식히는 보약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