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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사의 생명선은 시력검사”
  • 심연주 기자
  • 등록 2011-01-03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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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화 회장… “철저한 시력관리만이 안경사 권익과 부가가치 높인다”
 
‘성공은 수고의 대가(代價)’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을 빌리면, 대한안우회(이하 안우회) 김경화 회장은 안경원 경영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인물이다.

4•19 직후인 1960년, 선친(金洙英, 1986년 작고)이 운영하던 종로안경센터에서 밤도둑을 막기 위해 대학 1학년 때부터 안경원에서 숙직을 하면서, 간혹 아침 일찍 업소를 찾아오는 고객에게 안경을 판매하면서 인연을 맺은 김경화 회장은 누구보다 안경의 가치를 높이는데 힘써온 정통 안경사이다.

특히 김 경화 회장은 평생 동안 수집•애장해온 우리나라 고안경 200여 점을 대한안경사협회(홍지화 회장 재임시)에 기증, 우리나라 고안경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해져 있던 운명인데, 사회 초년생 때 기업체 샐러리맨으로 살아야 될지, 아니면 선친이 운영하는 안경원을 이어받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내가 다닌 대학교의 재단이 그룹社이고, 전공 학과도 경영학과라서 기업체 입사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안경과 함께 해온 세월이 벌써 50년이 넘었습니다”

김경화 회장은 성균관대 상과 3학년 재학시절 오후 5시에 퇴근한다는 조건으로 종로 천우당과 중구 저동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대표 장필원, 1920년 개업)의 안경원인 관광당에서 본격적으로 종사자 생활을 했다. 야간대학에 다니기 위해서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낮에는 안경인으로서, 저녁에는 대학생으로 바쁜 시기를 보냈다.

Q : 주경야독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판매가 한창 시작되는 시간에 퇴근하면 동료들 시샘도 많았을 텐데요.

“취업할 때 미리 약속을 받았지만 때때로 미안하죠. 사장님들도 젊을 때 배우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도 많이 했지만, 막상 고객들이 많을 때는 동료들에게 미안하죠. 그러나 졸업만큼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Q : 안경원은 언제 개원하셨나요.

“관광당에 근무하던 69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후에 종로 5가에서 독일 안경원을 개원했습니다. 같은 해 결혼도 했는데, 그 무렵에 아버님은 지금의 명동에서 금강 안경원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아버님이 연세도 있으셔서 명동에 있는 금강 안경원에 합류했죠.”

그러니까 김경화 회장이 선친이 운영하던 금강 안경원을 재 창립한다는 각오로 본격적인 비상한 때는 71년도이다. 이미 경험도 충분히 축적되었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안경을 단골로 해왔던 선친의 뒤를 이어 김경화 회장도 자연스럽게 대통령들의 안경을 전담하는 안경인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대통령들이 찾는 안경원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금강안경원은 정부 실력자들과 재벌가, 유명 연예인들이 몰릴 만큼 금강 안경원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Q : 그 분들 안경을 하시면서 일화가 많겠네요.

“그 분들의 개인사이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대통령께서는 연설문을 편하게 읽으시라고 누진렌즈를 해드렸는데 쉽게 적응을 못하셨습니다.

어느 날인가 중요한 자리에서 연설을 하셔야 되는데 누진렌즈가 불편하셨는지 급히 불러서 궁리 끝에 렌즈 중간에 선이 나있는 이중초점렌즈를 해드렸죠. 이 렌즈가 편하셨는지 그 뒤로는 이 렌즈만 이용하셨습니다.

또 당시 H 주미 대사님께 국산 HOC 안경테를 맞추어 드렸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국산 안경 자랑을 많이 하셨죠. 좋으신 인품만큼이나 국산품 애용도 남달랐던 분입니다.”

Q : 흔한 말로 높은 사람,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문제가 생기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존에 검증된 제품이 판매하기 편했을텐데요.

“부담이 컷죠.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생기면 안경원 신뢰도에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남들보다 새로운 것을 먼저 권해서 잘 쓰시는 모습을 보면 희열 같은 기쁨이 오죠. 일찍 부딪힐수록 그만큼 빨리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사실, 김경화 회장의 신제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국내 최초로 세이코 바리락스를 판매한 것이나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에 공연을 갔었던 희극배우 김희갑 씨에게 무테 안경을 처음으로 맞추어준 것 역시도 우리나라 안경원에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안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지만, 김 회장의 브랜드에 대한 욕심(?)에서도 기인한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조르지오 아르마니, 실루엣 등 명품 브랜드를 그 어느 안경원보다 우선적으로 판매한 곳이 바로 금강안경원이었다. 신모델, 신 브랜드의 최초 도착지가 바로 금강안경원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김 회장은 업체에서 새롭게 출시하는 제품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고, 수시로 수입사를 직접 찾아다니기도 했다. 제품에 대한 집중력이 오늘의 금강안경원을 만든 원동력인 셈이다.

이러한 집중력 때문일까. 김경화 회장은 서울시지부의 회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곧바로 서울지부 회관을 매입하기도 했다.

명색이 한국에서 가장 큰 지부에 자체 회관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곧이어 아직까지 전설적 기록으로 회자되는 서울 전체 회원이 참가한 종합체육대회를 효창운동장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신제품 동향에 집중하고 발 빠른 판매가 성공의 원동력

그리고 서울지부 회장을 마친 얼마 후 불거진 일명 안경사법에 문제가 발생, 대전에서 소집된 임시총회에서 김 회장이 궐석한 가운데, 그를 안경인협회 협회장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당시 안경인들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안경사법을 막기 위한 첫 단추로 제1회 안경사 국가시험을 꼽았다. 이 시험에 단체로 거부함으로써 안경인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였다.

결국 김 회장은 안경인이 단 한 명이라도 응시한다면 그 즉시 사임하겠다는 단서를 붙이고 협회장 취임을 수락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안경인들의 단합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일부 안경인들의 안경사 시험에 응시하려는 움직임을 여기저기에서 감지되었다. 그 즉시 김 회장은 협회장 직을 사퇴하는 결단을 내렸다.

회원들의 물샐틈없는 응집력이 절대 필요한 시기에 이탈자를 막기 위한 최후 카드를 뺀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극약 처방은 실제로 전국 안경인들의 분열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Q : 너무 과민한 반응이 아니었나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일본 호리바제작소의 호리바 마사오 최고고문이 있습니다. 이 분은 삐져나온 못은 더 삐져나오게 하라는 경영철학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당시 안경사 관련 의료기사법은 안경인들의 생존권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화급지경에 겉으로는 악법에 반대한다고 외치면서 뒤로는 시험을 보려는 이탈자가 적잖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시험을 막아야 되는데, 그게 바로 회장 수락할 때 단 하나 내걸었던 시험거부였는데, 막상 시험이 닥쳐오니까 일부에서 분위기가 바뀌는 거예요. 내 역할은 못처럼 삐져나가는 사퇴가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누구든 경종을 울려야 될 시점에 협회장 사퇴 카드를 내밀었고, 결과적입니다만 어느 정도 단합의 불씨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Q : 그러면 지금의 안경사 관련법규는 만족하시나요.

“100%는 아니어도 웬만큼은 잘되었습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안경사의 고유 업권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 이 안타깝죠. 이제부터는 선글라스나 컬러 콘택트렌즈도 지금처럼 그냥 놔둬서 안 됩니다.

안경렌즈 조제료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업권이 손바닥에 올려놓은 모래처럼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어요. 세월이 지난만큼 현실에 맞게 고쳐야죠.

우리 후학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시력검사도 한두 가지 더 챙겨야 하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단성이 성공의 밑거름

Q : 지난 2008년도부터 안우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평생을 안경과 함께 외길 인생을 살아온 안경원로들의 단체입니다. 지난 1987년 회원 27인이 발기하여 전문 12조에 근거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회원 가입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하향하는 회칙도 개정하는 등 정통 안경인들이 참여하는 친목 단체입니다. 후배들에게 자칫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용조용하게 회합을 갖고 있습니다.”

Q : 후배 안경사에게 당부 말씀을 주신다면 무엇일까요.

“글쎄요. 다들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경이 너무 패션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80년대에 80% 이상을 차지했던 하드 콘택트렌즈가 지금은 소프트가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영업도 중요하고 패션을 리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안경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선은 고객들의 시력 관리입니다. 안경사가 발전하려면 영업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단골환자들의 시력을 내 자신의 눈처럼 관리하겠다는 정신이 투철할 때 안경사의 권익도 살아나고 부가가치도 높아집니다. 더구나 안경원의 경쟁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실력으로 좌우되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사실, 김경화 회장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오늘의 성공을 일구었다. 50여 년간 안경원 경영에 올인하는 모습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삼성그룹社에 근무하던 차남 김진호 안경사에게 경영 전반을 맡김으로써 한 발자국 물러나 있지만, 가업 3대를 잇는 한국 전통의 명문 금강안경원의 김경화 회장은 언제나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현역 안경사로서 현장에서 고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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