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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명절 때면 만나고 뵙는 상대에게 의례히 덕담으로 ‘복(福)’을 받으라고 한다. 그러면 ‘복’ 이란 무엇인가 할 때 명확한 답을 내기가 수월치 않다.
한자 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한자의 福자부터 풀어보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福자는 ‘보일 시(示)’와 ‘찰 복(畗)’이 합한 글자이다.
示는 ‘제사 상(床)’의 상형문자이고, 畗은 술이 가득 찬 술병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따라서 천(天;神)에게 제사 지낸 술을 마시고 복을 받는다는 뜻이 되겠는데, 이를 음복(飮福)이라고 한다.
五福과 六極
중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나라를 세운 다음 조선(朝鮮)으로 건너가 임금이 되었다는 기자(箕子)를 초청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릴 ‘천도(天道)’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이때에 기자가 무왕에게 대답한 내용을 적은 글이 서경(書經) 제4편 주서(周書)에 나오는 홍범구조(洪範九疇)다.
세상의 큰 규범 아홉 조목은 동양의 정치와 생활의 원리를 밝힌 글로서 과거 동양 군주들의 ‘왕도(王道)의 성전(聖典)’이었다. 그 글 가운데 아홉 번째에 인간의 오복육극(五福六極)을 말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다.
다섯 가지 복이라는 것은 첫째 오래 사는 ‘수(壽)’요, 둘째는 ‘부(富)’요, 셋째는 몸과 마음이 안락한 ‘강녕(康寧)’이요, 넷째는 훌륭한 덕을 닦고 좋아하는 ‘유호덕(攸好德)’이고, 다섯째 편안하게 늙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오복만 갖추었다고 해서 복을 누린다고 할 수가 없다. 육극이 있기 때문이다.
육극 없는 오복을 갖추었을 때 참으로 복을 누린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육극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여섯 가지 불행을 말한 것으로 첫째는 일찍 죽는 ‘흉요절(凶夭折)’이요, 둘째는 ‘질병’이고, 셋째는 근심인 ‘우(憂)’요, 넷째는 ‘가난(貧)’이고, 다섯째는 ‘악함(惡)’이요, 여섯 번째는 ‘약함(弱)’이다.
오복육극이 중국 주나라 건국 당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지적한 것이라면, 3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불행 여섯 가지 속에 근심이 가난보다 우선시하는 까닭은(가난이 모든 근심의 원인이 될 수 있는데, 근심을 가난보다 먼저 둔 것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근심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작든 크든 근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부의 증대는 행복의 증대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기중심에서 타인허여(他人許與)로 덕을 쌓아가는 것만이 근심을 없애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