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관광객 급감 등 쇼핑환경 변화로 인기 하락… 안경원 매출 50~70% 감소
한 때 국내 안경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며 안경의 상징으로도 불리던 남대문이 최근 심상치 않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소위 ‘안경 유통의 메카’로 일컬어졌던 남대문지역의 안경원이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
안경테 생산의 메카인 대구와 더불어 안경산업의 궤적을 같이하는 남대문은 수많은 안경 관련 업체들이 모여들어 갖가지 제품과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남대문에서 안경을 처음 접했으며, 안경테와 안경렌즈 등 수많은 안경 제품이 남대문을 중심으로 유통됐다. 당연히 서울과 수도권 안경원들 대부분이 남대문에 들러 최신 안경 트렌드를 확인했고, 남대문에서 제품의 주문 및 배송을 하는게 당연할 정도였다.
안경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안경사협회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소재 현 회관 구입 전까지 대안협 역시 오랜기간 남대문 시대를 가졌다. 그만큼 남대문은 안경업계는 물론 안경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경 유통의 메카 퇴조세 곳곳서 감지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을 갖고 있는 남대문 안경업계가 최근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물론 경기침체의 여파로 모든 산업분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비단 남대문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항변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동안 안경 유통의 ‘메카’로서 세계 속에 한국 안경을 알린 명소(?)였던 남대문의 침체는 그 상징성이 결코 적지 않다.
실제로 본지가 남대문의 안경원과 안경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본 결과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단 매출이 급감했다는 말들이 많았다.
A안경원 관계자는 “작년 10월 이후 예전보다 50% 가량 매출이 줄었다”며 “요즘 같아서는 운영하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B안경원의 한 안경사도 “작년부터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해 지금은 70% 이상 감소했다”며 “특히 외국인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아 심각한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남대문 안경원들은 작년 10월 이후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외국인들의 방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화 강세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이 급감한 것이 매출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히고 있다.
매물 안경원 급증 속에 거래는 실종
이처럼 일본인의 발길이 크게 줄면서 일각에서는 남대문 상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어쩌면 앞으로 남대문 안경업체와 안경원의 절반 정도는 사라질 수 있다는 우울한 주장도 서슴지 않고 할 정도다.
최근 남대문에서는 안경원 상당수가 매물로 나왔지만 정작 구입하려는 이들이 없어 매매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이 지역의 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한 중개인은 “남대문 상권에 있는 안경원이 상당수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남대문 지역은 대부분 상가별로 매매가 되기에 부동산중개업체에 직접 문의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와 관련해 C안경원 원장도 “현재도 적자를 보면서 운영하는 안경원과 안경업체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라며 “실제로 남대문에서는 건물 층층마다 존재했던 안경원과 안경업체가 많이 사라졌는데, 2층 이상의 안경원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1층의 안경원들조차 간신히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남대문에서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안경사협회 유환고 서울지부장도 “안경 메카로서 호황을 누렸던 남대문이 최근 어려운 경기로 인해 매출 하락은 물론 회원 안경원 숫자도 많이 감소했다”며 “특히 최근 환율 문제 등으로 외국인의 발길도 줄면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게 사실”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유 지부장은 이어 “보통 비시즌에는 약 30% 정도의 매출 하락이 발생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50~70% 이상 매출이 줄어 심각한 상황”이라며 “더 심각한 것은 최근 남대문 시장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젊은층의 발길도 끊어졌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쇼핑객 인근의 명동지역으로 이동
남대문지역 안경업체들에 따르면, 과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남대문을 방문했지만 최근에는 그 숫자가 크게 줄었다. 특히 젊은층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입을 모았다. 남대문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안경을 구입하던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학업이나 취업준비 등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다 사후 문제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남대문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증가하고 있는 라식•라섹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안경을 찾는 젊은층이 대거 안경 착용을 포기하면서 그 여파가 안경의 메카인 남대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유환고 지부장 역시 “10~2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라식•라섹 시술 인구가 최근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했다”며 “20~30대 초반의 패션 주도층이 사라진다는 점이 남대문 상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대문 안경원의 쇠락 원인은 또 있다. 인근 명동에 최신 트렌드로 무장한 안경원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남대문이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된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남대문이 안경의 메카로서 안경에 대한 모든 정보와 흐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제 그 시장이 명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남대문에서 만난 한 안경업계 관계자는 “명동은 면세점과 백화점이 있는데다 각종 음식점과 숙박시설 등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이 전반적으로 매우 좋은 편”이라며 “그러나 남대문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으로 외국인들조차 명동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대문 안경원들의 호객행위와 과다 경쟁도 남대문 상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인 겨냥한 마케팅 접목 시급
안경사들은 쇠락 일로에 있는 남대문 안경원과 안경업체가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보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전의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영업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유환고 서울지부장은 “우선 안경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호객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로서 실시하고 있는 시력검사의 우수성을 국내외 고객에게 적극 홍보하는 한편 항상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쇼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지부장은 또 “한류의 영향으로 여심이나 감수성을 자극하는 트렌드가 인기를 끌면서 남대문 안경원의 경우 특히 외국인 고객들에게 트렌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코디네이션을 제시하는 영업전략을 활성화한다면 외국인, 그 중에서 중국인들에게 좀더 효과적인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남대문과 명동 일대에는 일본인보다 중국인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인은 무엇보다 씀씀이가 큰데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인해 화장품과 인삼 등을 많이 구매하고 있으며,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도 큰 편이다. 하지만 남대문 안경원들의 대응은 아직 일본인에게 맞춰져 있다. 중국인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에도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안경원이 아직 많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13억 중국 인구를 고려할 때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마케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남대문 안경업체들과 안경원들의 발빠른 대응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