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을 통해서 세상을 자각하고 세상과 상호작용한다.
또한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에 보여지고 인식한다. 「메스를 든 인문학」이라는 저서에서 ltugh aldersey-william씨가 한 말이다.
마음이란 뇌(腦)에 갖춰진 인지적 감정 능력들로 구성된 복잡한 체계이다. 그리고 뇌의 기본 설계는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신경과학의 연구결과는 거꾸로 몸이 마음에 반영하는 증거 또한 제공한다. 몸과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닌 하나다.
육체가 내리는 판단도 정신이 내리는 판단 못지 않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는 기(氣)를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의 세기(氣勢)로 보며, 기는 형이상학적인 만고불변의 이(理)에 대하여 형이하학적으로 변역( 易)하는 물질 자체로 보는 이른바 이기설(理氣說)이다.
기는 외유기화(外有氣化)하며 감정을 발동시키는 힘이 있으며, 기자(氣者)를 분이언지(分而言之)하면 천지귀신조화 현묘지총명(天地鬼神造化 玄妙之摠名)…이니 도시일기야(都是一氣也)로 이기분석편에 있는 원문의 내용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형태의 지식을 우선 체계적으로 의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자기 검열을 한다. 글의 진실성쪾논리의 정합성(整合性), 인간에 대한 예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중 그런 것들을 위해 자기가 쓴 글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수정하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지식은 사회에 속하지만 지혜는 개인에 속한다. 지식은 주고받을 수 있지만 지혜는 깨달을 수밖에 없다.
소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80대 할머니의 말씀인 즉슨... “얘야! 자식 키우는 사람은 그런 ‘막말’ 하는 게 아니다” 라는 젊은이에게 주는 일갈은 연수로 축적된 자득의 지혜인 것이다.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에 관한 지식이고, 또 하나는 하나의 단점을 다른 단점과 연결한 결과에 대한 지식이다(사실에 관한 명제들을 결합하여 논리학적으로 추론하여 얻은 지식을 말한다).
전자는 결국 감각과 기억으로서 확실한 지식이다. 즉 어떤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거나 혹은 진행된 일을 상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중인에게 요구되는 지식이다. 후자는 이른바 과학적 지식으로서 조건적이다.
예를 들면 도형(圖形)이 원(円)일 경우 그 중심을 통과하는 직선은 모두 그 원을 이등분한다는 같은 지식을 말한다. 이것은 철학자, 즉 추론한다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지식이다.
끝으로 우리 인체 내장에 대해서 비유로 성어(成語)가 된 말이 많다. 비위(脾胃), 담대(膽大), 간(肝), 애(腸), 낙담(落膽)과 함께 오장육부 등을 자주 인용하지만 뇌에 대한 것은 근간 뇌과학의 발달로 많은 과학서가 나오고 있는 이후부터이다.
마음을 우리 몸의 심장을 상징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이미 관용화되었다.
불교에서는 연꽃이 심장과 비슷하다고 해서 성즉심(性卽心)이라고까지 여기고 있다.
글쎄 올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