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펴고 난다고 한다.
황혼은 낮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마침내 되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헤겔(1770~1831)은 말했다.
흔히 문화를 정신적•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적•기술적인 발전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또한 문화란 인류의 지식과 신념 행위의 총체를 말하기도 한다.
나중에 교양이나 예술 등의 뜻도 가지게 되었다. 문화가 일단 질서요 조직이요 도그마라고 가정해 보면 일단 법석의 판굿은 부정적인 문화기호로서만 값이 매겨질 소지를 안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면서 이해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조직 원리가 등장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혼잡•불평등•정체성의 상실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양심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성선설(性善說)이나 제반 종교에서 말하는 양심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착한 마음이며, 그 거울에 비추어 악을 구별하는 본능적인 능력이다.
따라서 양심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지도 않으며 변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본성이며, 신(神)이나 하늘이 심어준 마음쯤으로 정의된다. 양심은 진실을 바탕으로 한 어진 마음이다.
진실은 참의 마음이다. 참 마음은 선을 지키려는 어진 마음이다. 어진 마음은 인격을 곧바로 세워준다. 양심은 자기의 착한 마음에 서 있다.
양심을 다진 명성은 이웃에게 주는 최상의 선심이다.
양심과 명성은 서로가 힘을 주며 공존을 누린다. 참삶의 구원은 양심에 있다. 양심은 인간이 가지는 선과 사랑의 본능이다.
양심은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타인의 자유를 사랑한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착실한 벗이며 가장 신성한 것이다. 또 양심은 침묵을 지킨다. 양심은 자기보존에서부터 사회의 모든 질서까지를 잘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기도 한다.
모든 양심은 곧고 바르게 싸워 새 천지를 얻어야 한다. 양심이야말로 스스로 돌라보아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삼아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좋은 친구라고 단테가 이야기했고, 인간을 비추는 유일한 램프는 이성이며, 생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가 양심인 것이다.
하이네(1797~1856) 시인의 언명이다. 지팡이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일 말이 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開化期) 때 마카오 신사가 많았다.
양복에다 단장(短杖)을 들고 메가네(개화경) 끼고, 중절모 눌러 쓴 신식 건달신사가 종로 네거리를 활보했다. 오죽하면 노래가사에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유행이 별스러워서인지 선글라스 쓴 여성들이 얼굴 중심으로 쓰고 있는 것이 근간의 유행하는 패션모델인가 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나 지식인들이 안경을 주로 썼다.
그리하여 안경은 지식인의 상징처럼 여겨져 집단학살이 되는 비운의 상처가 인도차이나 독재자 폴포트(1928~1998)에 의해 저질러진 것을 뜻 있는 세계의 지성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안경은 문명의 이기인 동시에 문화의 한 면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