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볍씨에 뿌릴 소금간 좀 봐 주십시오.
담은 지 얼마나 됐나?
좀 됐습니다.’

커다란 방탱이 속에 가득한 씨알을 손으로 만져보며 소금 한 웅큼 쥐고 뿌린다. 염도가 골고루 가도록 양손으로 볍씨를 뒤엎는다.

60년대 초 아직도 재래식 못자리 보는데 조상 때부터 전래해 오던 묘판(苗板) 준비에 한 몫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벼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거 잊지 말거라’모 낸지 달포가 지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쑥쑥 벼가 눈에 띄게 자란다.

자라는 나락을 보는 마음! 그것이 바로 농심(農心)이다. 그런데 영농기술의 발달과 소득증대가 목표가 된 이래 종래의 농심은 사라졌다. 농경사회가 공업사회로 산업사회, 현재는 IT신기술사회다.

안경업계는 어떠했는가….

안경기술을 배우려면 수공업적 기능인 후계자를 양성하던 제도에 들어가야만 했다. 오랫동안 스승 밑에서 수업하여 비로소 한 사람의 완전한 수공업으로 독립하여 영업도 하게 되며 그도 또한 도제(徒弟)를 두어서 기능을 전수할 수 있게 된다.

안경기술은 손끝에 고도의 정신집중이 요구되는 정밀가공을 반복해서 쌓은 기능훈련이 숙달 경지에 이르게 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안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렌즈 조작연마기술이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종래의 그 어려운 수작업을 대신하게 되었고, 따라서 너도 나도 안경업계에 뛰어든 사람이 증가하게 되었다.

종래의 정통파(正統派)와 신진영업파(新進營業派)가 대두하게 이르렀다.

안경업계에서도 전통사회의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면서 이해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조직 원리가 등장함에 따라 업계의 갈등, 혼잡, 불평등, 정체성의 상실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던 것이다.

안경방(眼鏡房), 이때의 방은 공방(工房)의 뜻이 함유되었던 안경점(眼鏡店) 점포(店鋪)의 뜻이고, 안경원은 안경전문직능인이 운영하는 전문업소가 오늘날의 안경원이다.

80년대 초입 컴퓨터라는 자동굴절계가 도입되면서 안경원에서 혁신적인 괄목상대(刮目相對)의 사건이 일어났다. 시력을 컴퓨터라는 최신 전자기기로 측정하는 것이다. 이때 수익성에 눈 밝은 사람들은 안경업계에 뛰어든 것.

안경 맞추러 중년부인이 찾아 왔다. 중증도 근시가 넘는 높은 도수였다. 정통적으로 배우고 익힌 기사는 높은 도수에는 렌즈가 크며 어지러워 낄 수 없다고 하면서 작은 알을 권했지만 고객은 고개를 저으며 나갔다.

사장이 기사를 불러 추궁했다. 손님 요구대로 해주지 왜 보냈느냐는 것이다. 멋을 부리려면 도수를 낮춰야 되고 잘 보이려고 하면 렌즈가 작아야 한다고 했다.

장사가 돼야 업이 지속될게 아닌가.

아니 올곧은 장인정신으로 잘 보이고, 가볍고 멋있게 맞춰주면 고객은 끊이지 않는다고 믿는 정통파 안경인이 신진파들에 대해 먼저 공통점을 구해 체면을 세워놓고 의견이 상반된 대립 점을 발견하고 줄여나가게 되면 갈등의 요소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