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일단 질서요, 조직이요, 도그마라고 가정해 보면 야단법석의 판굿은 부정적인 문화 기호로만 값이 매져질 소지를 안고 있다.
문화를 평화스럽게만 보면 분석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상황을 은폐하게 된다.
전통사회의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면서 이해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조직의 원리가 등장하였으며,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 혼잡, 불평 등 정체성의 상실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낚시는 예부터 승마, 사냥과 함께 삼대도락(三大道樂)으로 여겨 왔음은 오늘날에도 크게 변함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도락의 경지도 크게 따져 들어가 보면 만만하지 않게 도락이라고 하는 뒤안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없지 않다.
낚시질은 즐거운 일이지만 오히려 살생(殺生)의 권력을 쥐고 있으며, 바둑•장기는 맑은 놀음이지만 또한 전쟁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이 일을 좋아함은 일을 덜어서 한가히 지냄만 못하고, 재능이 많음은 무능하여 본성을 다함만 같지 못하다. 「채근담(菜根譚)」의 저자 홍자성(洪自誠)의 언표(言表)다.
낚시와 사냥은 원시사회에서는 생활 아니 생존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인지의 발달이 문명사회를 이룩하고 낚시도 도락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오늘날의 현주소다.
낚시는 크게 민물, 바다로 나뉜다. 그 어디든 낚시는 참고 기다리는 인고문화(忍苦文化)의 소산임에 틀림없다. 민물낚시의 경우는 바다에 비해 위험도는 덜하지만 탐닉하기는 대동소이할 뿐이다.
공자의 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깊이 따져 들어가면 그물보다는 오히려 낚시가 고기의 씨를 말릴 수 있다. 그물은 피해갈 수 있지만 미갑은 굶주림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민물, 바다 번갈아 미칠 듯이 조행에 나섰고 칼럼도 계속 경향의 낚시잡지에 기고했다.
얻은 결론은 낚시는 참고 기다리는 것이고 취적어비취어(取適漁非取魚)라는 것, 잡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잡은 고기를 소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강(淸江)에 낚시 넣고 편주(扁舟)에 실렸으니 남이 이르기를 취적이 비취어를
제 뉘라서 알리오’
「청구영언(靑丘永言)」송종원(宋宗元)의 시조다.
오랜 기간 낚시를 해 얻은 것은 낚시에는 기(技) 7, 운(運) 3이라는 것. 운을 우연으로 대체하면 우연이란 예기치 않던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연은 원인에 관한 무리, 우연이란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과계열 또는 법칙에 대하여 이러한 것으로부터는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흔히 문화를 정신적인, 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과 기술적인 발전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또한 문화란 인류의 지식, 신념행위의 총체를 말하기도 한다. 나중에 교양, 예술 등의 뜻을 갖게 되었다.
이번 돌고래호의 조난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는 낚시꾼에서 낚시인으로 지양하여 자연을 낚는 도락을 즐기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