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고 간에 개인들이 모임이나 조직 규모가 제법 큰 단체는 모두 구성원들의 권익증진이 이슈가 되게 마련이다.
사협은 직능단체 가운데서 규모가 매우 큰 단체로 알려져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회원의 권익에 수반되는 확고한 업무범위를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이른바 단독법을 입법 추진해 왔다.
얼마나 힘들인 적공(積功)인가…. 그런데 별것 큰일도 아닌 것으로 사단(事端)이나 염원하던 기대가 수포가 됐다. 인간사는 공(功)만 쌓아 드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여기에 운수도 따라야 되는가보다. 더욱이 입법추진 같은 개연성(蓋然性)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란 과거를 연구하는 죽은 학문이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실증주의적인 학문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역사는 인간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시간적 추이와 공간적 이동을 통하여 인간이 축적해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면의 성과를 가시적 관점에서 때로는 미시적 관점에서 반성해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한다.
필자는 20여 년간 민물, 바다 할 것 없이 낚시를 해 왔다. 그리고 단상(斷想)인 칼럼을 써 왔다. 낚시란 종합 결론인 즉 기(技) 7, 운(運) 3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능숙하게 낚는 기술이 있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기대하는 조과(釣果)를 거둘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인간사에 대입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운수로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은 속히 잊을수록 후일을 도모하는데 유익하다. 단독법 상정 서류는 골방 시렁에 얹혀두고 회무정리에 몰두해야 한다.
본래 과거는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관한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선되며 진보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의식은 변화에 대한 의식이다.
다가올 시간은 지금과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이해한다. 현재에 대한 강력한 파악은 현재를 미래로 변형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나는 운명에 대한 자유로운 창조였다. 우리들은 나쁜 운으로 인한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식적인(또 무의식적인) 동기들로 인한 실패를 비난할 때면 우리들은 역사철학자가 된다.
후회로 엉킨 매듭은 단칼로 베어 풀어야 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라는 것이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고, 지나간 것이 있다면 오는 것도 있다.
속담은 대표적인 스케치다. 예를 들면 ‘나쁜 짓을 하면 그 몇 배나 되는 화(禍)를 입는다.’우리는 속담을 이용하여 다양한 사건들의 이미를 이해한다.
속담이 지니는 함축적인 인과적 성격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양난(兩難)의 지경에 다달았을 때 이르는 곤궁한 말이다.
그런데 사협은 중지라는 지혜의 보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직이다.
정직은 지혜의 첫 걸음이며 인간관계 소통의 바탕으로 삼으면 내일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