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공평하게 나이를 한 살씩 먹는 설날이 찾아왔다. 축원(祝願)의 덕담이 오가는 설날 아침을 뜻하는 원단(元旦)의 단(旦)은 지평선 위에 해가 떠있는 모양으로 설날은 태양처럼 밝은 희망을 가슴에 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한민족 고유의 설날이 양력설인 신정(新正)을 밀어내고 제자리를 되찾은 지는 불과 25년 조금 넘었다.
일제 강점기인 1895년에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인 1월 1일을 설날처럼 지내오다 1985년에 ‘민속의 날’을 만들어 하루를 휴무일로 정하고, 동요에 나오는 까치설날부터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해 본래 모습을 갖춘 때가 1989년이다. 설날을 선호하는 민심(民心)이 94년간의 오랜 줄다리기 끝에 양력설을 물리친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나온 「동국세시기」 등에는 설날에 제를 올리는 것을 차례(茶禮),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 어른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歲拜)라 했다.
설날에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면서 무병장수와 공부 열심히 하라는 권고는 한민족 특유의 은근한 교육법이고, 친인척과 가까운 이웃에게 선물을 나누는 마음 씀씀이는 한국인의 사랑법이다. 이웃 간에 오곡백과를 주고받는 풍습이 우리네 고유의 전통인 것이다.
이런 민족의 최대 명절에 안경사협회가 보건복지부 주무부서에 설날 선물로 만다린계의 귤을 담은 한라봉 몇 박스를 보냈다가 되돌려 받는 민망한 사태가 또 일어났다.
지난해 불볕의 삼복(三伏) 더위 때 수박 몇 덩어리를 복지부의 동일 부서에 보냈다가 되돌려 받는 촌극이 또 한 번 벌어진 것이다.
협회 회원들로서는 이처럼 민망한 일도 흔치 않아서 자칫 해당부서의 공무원들이 쌀쌀맞다고 투덜댈 수 있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수는 협회 쪽에 있다.
원래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된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금액의 고하를 떠나 일체의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공무원행동강령에서 규정한 때문이다. 공무원이 타인에게 대접 받을 수 있는 범위는 1인당 3만원 이하의 식사비만 허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금액의 고하를 떠나 관공서로 선물을 버젓이 보낸 자체가 실수인 것이다.
많은 회원들은 이 같은 민망한 일이 반복되면서 창피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4만여 회원이 가입된 초대형 협회의 집행부정도라면 공무원행동강령쯤은 인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퇴짜 당할 일만 벌이고 있으니 창피하고, 불안감은 선물을 내칠 정도로 협회가 복지부에 밉보여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불안한 것이다.
협회 집행부가 세상물정에 어두워서 생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서툰 행동들이 반복될수록 회원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단체든 회무를 할 때는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자국을 봐야한다는, 즉 앞선 사람의 실패를 교훈삼아 주의해야 한다는 전거복철(前車覆轍)을 따르는 게 올바른 회무다.
삼복더위에 이어 또다시 설날에 선물로 망신당하는 집행부의 어리숙한 선물정치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