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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다. 본인 스스로 좋으면 그만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는, 이른바 속언(俗言)이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최종 결정권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의미와 함께 객관성의 결여도 없지 않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내포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형성된 동기는 자상히 알 수는 없으나 하필 ‘안경’이 눈을 제치고 주격(主格)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웬일일까….
알다시피 안경은 우리나라 개화기(開化期)에 외국의 문물을 타고 들어왔다. 그 때 당시 안경은 문명의 이기였다. 다시 말하면 실용성(實用性)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선 안경은 ‘문화’의 산물이 되었다. 오늘날 문화라는 언어만큼 다양하게 쓰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한 마디로 문화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문화는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관념과 활동을 의미한다고 정의한 인류학 교수 그랜트 매크래켄(Grant Mcracken)의 말처럼 이 시대에 걸맞은 포괄적이고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문화는 정신적인 것이지만 소비의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제눈에 안경은 없다’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한다. 결국 이 말은 사람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르며, 누가 예쁘고 안 예쁜지에 대해 모든 사람의 의견이 다르며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 사람들은 미모는 단지 거죽 한 꺼풀이라고도 한다. 이 얘기는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겉모습 이외에는 진정 어떠한 차이도 없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격언은 표준사회과학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완벽화한 말이 된다. 그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마음이 빈 서판(書板•tabual rasa)인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관한 취향과 기준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출생 후의 사회화 과정에서 획득된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성행하면서 유행에 있어 개인주의는 개성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많다. 현대성이라는 이름마다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고 구매하는 유행의 메카니즘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소?” “글쎄~예! 좀 전에 집었던 게 낳을 것 같네~예!” “붉은 색이 튀지 않아서요?” “그래요? 하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