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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내밀한 생성 원리의 이치를 어찌 인간이 모두 알 수 있으랴….
자연은 항상 합리와 신비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천문의 얼굴과 역상의 얼굴 또는 풍요의 얼굴, 풍수의 얼굴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일찍부터 자연•우주•세계 등의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인 천(天)은 동양철학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였다. 인간 삶의 절실한 문제를 자연환경에서 해결하기 위해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의 방향과 이상을 제시했던 동양철학에서 자연과 인간관계는 일찍부터 철학의 제1주제로 상정되었다.
인간들이 자연현상의 순리에 어긋나면 천벌이 내릴 징조로 해석한다. 하늘이 벌(罰)을 내릴 징조를 구징(咎徵)이라고 하며, 하늘이 상을 내릴 조심을 휴징(休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파하고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밝힌 노자(老子)의 언명(言明)은 어쩌면 과학적 우주관(宇宙觀)일지 모른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진•쓰나미(津波, つなみ)•화산폭발, 이 3대의 화근이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반드시 예상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이번 센다이(仙臺) 주변 동부지역의 지진과 쓰나미는 당국인 일본인은 물론 세계가 깜짝 놀랄 재앙(災殃)이었다. 그러나 이 참담한 현실 앞에, 그 충격 앞에 일본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자세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거대한 재앙을 흡수, 극복하는 일본의 문화는 특별하다. 위기 대처에도 무기력하지 않으면서 침착하다. 일본의 재앙 그 충격과 슬픔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폭넓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엄청난 고통 속에 온 몸으로 생존의 고결함을 역설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95년에 고베(神戶)대지진, 그 밖에 나고야(名古屋)등 여러 군데에서 해일과 지진이 일어나곤 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관동대지진 때 폭동을 조직해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조선인을 집단학살한 기억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지만, 고통을 당한 남의 마음을 아프게는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일본을 무시할 수 없으며 피차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오랜 개척의 전통으로 강한 조직성과 기술존중, 특히 개량공학적 사고 근로정신을 원형에 내재시키며, 공업화에 성공한 일본에 대해서 우리는 대의(大義)와 소절(小節)을 구별할 줄 아는 과학적 정직성을 지닌 양식(良識)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