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간지와 월간지의 정간, 휴간, 폐간, 속간 등의 출몰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사상계」가 폐간되면서 「월간 신동아」가 복간되었고 「월간 중앙」「월간 조선」, 문화지로서 「현대문학」「자유문학」등이 독자를 사로잡았지만 현재까지 중단 없이 지속돼 온 문학지는 「현대문학」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오발탄(誤發彈)’이 있었는가 하면 손창섭의 ‘잉여인간(剩餘人間)’도 있었다. 이 ‘잉여인간’이 시대상을 여실히 조명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만기치과의원에는 원장보다도 아니 간호사보다도 먼저 출근, 간호사가 하는 청소를 도와주는 채익준이 있는가 하면, 환몽가(幻夢家) 봉우가 일찍부터 대합실을 차지하고 있다.
간호사의 청소를 도와주던 채익준이가 배달된 조간을 집어 들고 훑어보더니만 ‘이런, 이런 이 능지처참(陵遲處斬)할 놈, 아니 육시(戮屍)할 놈 같으니라고! 안 그래요, 간호사?’ 그때 봉우가 들어온다. 옳지! ‘봉우, 자네 어떻게 생각해?’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투시하고 예리하게 비평을 가하는 비분강개파 채익준, 떠름한 얼굴의 환몽가, 유약한 존재인 봉우, 외유내강한 존재, 정확하고 기품 있는 말을 하는 만기원장. 이들은 모두 중학동창이라는 숙명을 지닌 분들이다.
얼핏 피상적으로 살피면 만기원장은 근심 걱정 없어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3개월치나 집세를 내지 못한데다가 집(의원)을 비우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행복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딱한 처지를 어떻게 꿰뚫고 아는지 봉우 처가 만나자는 것이다.
가려운데 손이 가듯이 안 만날 수가 없었다. 남편 친구라는 선을 넘어 야비한 복선이 스민 미소가 스치며 이사도 달세 밀린 것도 걱정 말라는 간격 없이 웃고 나서 사회에도 보익(補益)한 일인데 ‘원장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가요?’ 일그러진 애정과 애욕이 미묘한 혼란이 숨 가쁜 까닭이기도 하다. 아
무와도 나눌 수 없는 고민이란 영혼까지도 고갈하게 만드는 법인가 보다. 이런 때는 늦은 밤 귀갓길에 전차 선로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상에 눈이 머물고 화전민의 생활이 동경되는 환각 속에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불안한 자신을 극복해보려는 무력한 표정일 모른다.
정신적 요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과 동물의 완충기 때 같은 비밀을 자백하듯 간신히 그렸다. 인간적인 약점이 온몸에 종기가 띠처럼 감싸고 있었다.
굴욕에 가까운 고독을 느끼게 했다. 이여 삶에 지쳐 있었다. 탁류에 휩쓸려 흐르는 물거품의 불안을 그는 면하지 못한 채 있었다. 어머니의 품을 갖지 못한 고아의 고독이었다.
이른바 현대의 잉여인간 군상이었다.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런 처지의 인간들이 잉여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恨)은 단순한 억울함의 차원에서 한 단계 승화된 만물에 대한 심층적 인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