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때는 여자들 립스틱의 컬러가 진해지고, 공무원 응시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보존기간이 긴 음식이나 저금통이 잘 팔리는 것도 불경기 때이고, 심한 스트레스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불경기 현상이다. 다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불경기에 느린 박자의 노래가 인기를 끈다는 이유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불경기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가격파괴로서 안경원은 이 부분에서 천하장사급이다.
최근 서울 노원구 일대에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전단지에 많은 안경사들이 분노하고 있다. 모 체인이 가맹점 오픈과 때맞춰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이 전단지에는 국산 뿔테의 소비자가격이 3천원, 1번 압축한 렌즈 가격이 7,000원으로 적혀 있다.
더구나 이 전단지가 안경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유명 브랜드의 콘택트렌즈 가격이 노마진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산 뿔테 가격을 ‘20,000원→3,000원’, 1번 압축한 렌즈를 ‘15,000원→7,000원’으로 표시해 주변 안경원을 파렴치한 장사꾼으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에서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자기 상품을 자기 마음대로 판매하는 것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안경원을 파렴치한 장사꾼으로 내모는 전단지를 무차별 뿌려대고 있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열흘 전쯤에 이 체인은 노원구 어느 커피숍에서 열댓 명의 안경사를 모아놓고 사업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 안경사는 회사 안내서 한 장 없이 체인 대표자가 ‘나를 믿고 따르라’는 원맨쇼를 벌인 설명회였다고 전했다.
또 이 체인 대표는 이날 자신들의 영업 전략으로 콘택트렌즈를 거의 마진 없이 판매해 젊은층 고객에게 신뢰를 얻는 후 그들의 부모에게 누진렌즈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콘택트렌즈를 미끼 상품으로 고객을 유인한 후 누진렌즈로 매출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더구나 체인 대표는 이날 서울지역은 대표자 본인 등이 개설해야 되므로 제3자에게 가맹점을 내줄 수 없고, 부산지역도 현재 부산에 오픈한 가맹원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개설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명회 중간에 3~4명이 퇴장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안경원이 불행의 늪에 빠진 것은 개인의 이기심 때문이다. 전문성으로 경쟁해야할 안경사들이 가격경쟁이라는 달콤한 마약에 취해서 안경원을 폐인처럼 만들어 사지로 내몰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좌충우돌 주변 안경원을 초토화시키면서 고객을 유인해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가 제자리에 머문다는 점이다. 모든 안경원이 저마다 가격파괴에 뛰어들면서 서로가 턱없이 가격만 내린 채 소득도 없이 골병만 드는 것이다.
현대는 누가 뭐래도 돈이 최고인 세상이지만, 가격경쟁이 일상화되면 어느 산업이든 도태한다는 것이 경영학의 ABC다. 경영학에선 가격경쟁을 접어야 너도 나도 살 수 있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