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최악의 팀은 프랑스 대표팀이다. 무득점 1회전 탈락이라는 불명예스런 성적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프랑스 팀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 것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추악한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의료 책임자인 장 미셸 페레는 경기의 패인을 유럽 프로리그와 국제축구연맹(FIFA) 때문이라고 둘러댔고,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코칭 스태프와 프랑스축구협회 때문에 졌다고 하여 지탄을 받았다.
난군(亂軍)이라 함은 아군을 스스로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어 자중지란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또 인승(引勝)은 자중지란의 상태가 되면 승리를 적에게 끌어다 준다는 뜻에서 쓰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 가장 용서받기 어려운 패자는 자기편끼리 내분을 벌이다 패배하는 것이고, 싸움도 하기 전에 분열하여 패배하는 적전분열(敵前分裂)이다.
원래, 자중지란을 밥 먹듯이 자주 하는 곳으로 정당과 단체를 꼽는 이들이 많다. 태생적으로 소속원들이 저마다 주인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 옛날을 찾을 것도 없이 지금의 한나라당에서 벌어지는 친이계니 친박계니 하는 것도 자중지란의 대표적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패망한 이유도 자중지란 때문이고, 임진왜란도 조정 대신들이 당파 싸움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슬그머니 왜구가 침략을 했다.
▶지금 안경사협회 집행부 일부 인사를 두고 흑백 논리, 왈가왈부가 협회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양이다. 득(得)과 실(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중된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안경사협회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어떠한가는 삼척동자도 쉽게 알 수 있는 화급지경이 아닐 수 없다. 미용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 금지 등 의료기사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계류중이고, 한쪽에서는 협회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는 국회의원 로비설 수사가 한창이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이 지금의 협회 처지이고,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위태로운 신세가 안경사들의 모습이다. 개인의 억울함이나 이해를 따지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분함과 원망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것은 본의는 아니겠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그 어떤 회원이라도 대사(大事)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협회를 자중지란에 빠트리는 일은 잠시 미뤄야 한다. 화급한 시기에는 힘을 합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라 하여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분란을 조장하다 보면 결국 그 화(禍)는 자신에게 돌아갈 뿐이다. 그게 세상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