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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8개월간 재임한 최규하 대통령은 한평생 대한민국의 국익 수호에 앞장선 성공한 외교관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 건국 후 대한민국에서 뛰어난 영어 구사로 외무부 통상국장과 외무부 장관을 지낸 정통 외교관으로서 그가 이뤄낸 업적은 지금도 외교가에서 신화로 기억될 만큼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특히, 지난 68년 미국의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피랍되었을 때 한반도의 전면전 발발을 우려해 특사로 파견된 미국 사이랜스 밴스 국무장관과의 단독 철야회담에서 뚝심과 끈기로 최종 합의안을 도출시킨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당시 최규하 외무장관은 미국 측으로부터 1억 달러 규모의 파격적인 군사원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때 밴스 장관은 귀국길에서 “최 장관의 애국심과 고집, 인내력, 그리고 그가 계속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기초가 된 ‘한미 국방각료연례회의’ 성사,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예우를 다룬 브라운 이행각서를 한국 측에 유리하게 개정한 것 등은 최 前대통령의 뚝심과 불굴의 인내심으로 일궈낸 업적이다.
생전에 파격적인 웰링턴 스타일의 안경을 즐겨 썼던 최규하 대통령은 평소 철저한 검약 생활을 실천했으나 외교관으로서 스타일리시한 멋을 내기 위해 안경만큼은 작은 사치를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