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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조금 덜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안경원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독자 발언기사가 안경 관련지나 일반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투고한 독자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진실을 추구해 나가지 못하고 그냥 우기는 형태의 것 밖에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장사란 상업인의 업무 내용을 말하는데, 상품의 매매에 의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재화전환(財貨轉換)의 매개를 하고 이익을 취하는 영업행위를 말한다. 투고자가 ‘장사’에 대한 혐오를 느낀 것은 상업에 대한 전래의 불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조 봉건시대의 계급관념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품계가 ‘상’을 제일 밑에 두어 매우 천시했다. 이뿐인가. 생필품 생산을 담당한 공•장(工•匠) 역시 멸시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임란(壬亂)이 평정된 이후 유정(惟政)과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일본에 건너가 포로(捕虜)로 잡혀간 도공(陶工)들을 송환해 오는 과정에서 조선인이 본국(本國)에 오기를 거부하는 도공이 있었다는 것.
일본에 있어 보니 도공이 예우 받고 사는데 모국이지만 건너가면 또 업신여김 당하는데 나는 앙갈라요…의 변명이다.
일본은 남유럽에 있는 포르투갈과 교역하면서 화약으로 발사되는 조총을 임란 50년 전에 만들어 놓고 1592년 외침을 감행한 것이다.
일본은 침략에 필요한 신식무기뿐만 아니라 공업과 상업에 대한 체계적인 구조도 유럽에서 도입하여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을 불신하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에 있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건 경제원리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달리면 ‘암시장’이나 야매(夜賣)가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도 경제원리다. 그리고 암시장은 늘 왜곡되고 희생자를 낳게 만드는 폐단도 따랐다.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는 곳은 점포(店鋪)이전에 전포(廛鋪)가 있었다.
안경도 점포(店鋪)였다. 그러나 현재의 안경원은 경영자의 자격과 그 업무내용이 과거와는 획기적으로 다르다. 안경사는 법정직종으로서 시력보건을 관장하는 보건직이다.
판매가 있으니 장사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매품이 맞춤품이고 단순히 생산자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매개하는 상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는 전문화•분업화의 시대다. 통상 명분보다는 효용을 중시하며 관념론적 사고와는 거리를 둬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역도 상행위다. 상이 없으면 사농공이 무용한 시대로 변했다.
장사! 결코 혐오스럽고 타기(唾棄)할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