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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 길인가…
어쨌든 인생을 길에 곧잘 비유한다. 만남과 떠남(헤어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별이고(愛別離苦)는 인생팔고(人生八苦) 가운데 하나다. 이번 추석 때 산소 가는 길이 막혀 헛걸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내놓고 속 태울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벌초 길은 고사하더라도 웬만한 산길은 다 없어졌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없어질 수밖에….
내가 어릴 때 국민학교에 다니는 길은 큰 길이나 신작로 말고도 산길이 두 군데나 있었다. 상단인 우리 집에서 하단으로 가려면 질러가는 산길과 전촌(全村)마을로 건너 또 산길이 오르막 내리막으로 있다. 이 마을 뒷산 길은 애들이 소풍삼아 가는 길만은 아니다.
소•마가 짐을 지고 다니는가하면, 마을 농군들이 짐지고 다니는 삶의 길이기도 하다. 평지의 소로에는 질경이가 깔려 있지만 관심 없고, 7~8월 되면 개울 가까운 습한 곳에는‘싱아’라는 달고 신 사탕수수같은 물대를 찍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가?’라는 책을 쓴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의 고향(개풍)에는 그 시디신 싱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남한 곳곳을 다녀 찾아봐도 한 대의 싱아도 보지 못했고, 질경은 울릉도에서 처음 봤을 뿐이다.
우리나라 지도가 호랑이 형국(形局)이라면 눈에 위치한 귀주대첩인 고장(古場) 구성이다. 집에서 평양이 3백30리, 평양에서 서울이 550리니 부산에선 2천리 떨어진 상거(相拒)한 거리이다.
문화부장관을 역임하셨던 이어령 선생이 「지선의 오솔길」을 개작하여 내놓는다고 한다. 오솔길! 호젓한 길이 있을까.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길을 오솔길이라고 할 순 없지 않는가. 차라리 길이 도(道)로 전이되는 무게로 다가서면 어떨까 싶다.
도란 성(性)을 거느리는 것이라면 인간이 각성하여 실천해 나가야 할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영화 관람은 담을 쌓았지만 30~50대 때는 웬만한 프로는 빠지지 않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라 스트라다(La strada)의 「길」이 기억난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캄캄한 모래사장에서 한웅큼 모래를 움켜쥐고 울부짖는 잠파노(안소니 퀸 분)는 백치인 젤소미나(주리에터 마시나 분)를 길바닥에 버려둔 채 떠나 온 것에 가책을 느껴 몸부림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유랑극단의 전 재산이래야 삼륜 오토바이이고, 쇠사슬을 가슴에 감아 끊는 단순한 곡마단 단장, 북치고 뚱나팔(트럼펫)부는 백치미인 젤소미나는 그녀의 발가락에 채인 돌맹이 하나를 보고 너는 어떤 연유로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다.
있는 의미는 바로 목적이 된다.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의 도(道)가 깃들여 있다. 도는 만물의 이치(理致)의 근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