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이음, 하략).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산물인 황무지(荒蕪地)는 인간 영혼의 타락과 런던 및 유럽의 붕괴를 그리고 있는 시인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의 자연파괴와 생태계의 황폐화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1941년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나라도 우리의 뜻과 전혀 관계없이 이른바 대동아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징병, 징용, 정신대 등으로 강제로 징집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출(供出)이라는 이름아래 놋쇠, 곡물 등을 강제적으로 수탈당했다.
먹을 것은 쌀, 좁쌀 등 미곡은 공출 외에도 가져가는가 하면 잡곡인 수수, 옥수수, 콩, 팥 가리지 않고 곡물 모두를 수탈해 갔다. 그 대신 배급으로 주는 것이 좁쌀을 갈아 만든 푸시시한 가루뭉치를 선심 쓰듯 배급하기도 했다.
노랑 봄철이 따로 없었다. 춘궁기 보릿고개가 오기 전 밭고랑 주위의 둑에서 쑥을 캐거나 기타 나물을 뜯고 강변의 여인네들이 광주리를 이고 삼삼오오 모여 ‘메’라는 풀뿌리를 캐는 것인데, 이 풀뿌리가 고구마 같이 들척지근하고 양도 있어 충분히 요기가 된다.
이른바 풀뿌리인데 이것 말고도 마늘쪽 같이 생긴 식물이 뿌리인데 ‘무릇’을 평안도 방언으로 ‘물구지’라고 한다. 양념을 잘해 쪄서 먹으면 봄 춘궁기를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식량원이 되기도 한다.
다음은 ‘송구’라고 하는 소나무 속껍질인데, 제대로 하려면 찹쌀가루와 같이 쳐 만들면 별미지만 찹쌀가루가 어디 있는지 괜히 해본 소리지. 다행히 내 고향 춘궁기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일 수밖에.
내 고향 구성(龜城)은 평양까지 3백 3십리, 평양에서 서울이 5백 5십리, 요즈음 거리를 km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내 고장 자랑할 것 하나도 없다. 빛낸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일로 무삼 하겠는가. 회고하자면 조선의 1등 금부자 최창학 씨가 구성 관서면에서 양푼 같은 금덩어리를 몇 개 노다지를 캐내 「조선일보」를 살릴 수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 생각수록 망연자실하게 되는 게 세계 속의 한국이다.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목숨을 이어가던 때와 판이하게 다른 남북문제는 어찌할꼬. 그러나 시간이 문제지 된다가 있다. 도(道)가 있기 때문이다. 도란 있는 그대로의 세상 모습이 곧 도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이 궁(窮)의 상태다. 궁은 변하게 되어 있다. 변즉통(變則通), 변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남북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래갈 수도 있지만 쉬이 풀릴 수도 있는 문제다. 어른들도 애들처럼 수치를 느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