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공동체를 이루는 존재로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인간의 시간적, 공간적 발전의 제반사실을 당시의 공동체에서 본 가치와 관련지은 심리적, 물질적 인과관계에 관해 규명하고 또 서술하는 과학이다.
흔히 역사라고 일컫는 것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가 들어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는 객관적인 사실 혹은 과거의 일로써의 역사이고, 둘째는 이전 사실의 인식, 즉 역사서술이나 역사책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이며, 셋째는 우리가 그 현재에 존재하면서 행동적으로 역사를 만드는, 현실의 세계를 역사적으로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역사다.
역사를 잇다는 것은 곧 우리의 현재라는 것이 성립된 유래를 안다는 것이다. 과거를 모르고서는 현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전쟁이 없었던 해는 223년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국제관계는 긴장이 심하며,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피로 물들어있는데 그 진짜 원인은 오히려 그 사회가 계급적인 사회이며 계급적인 모순들을 잉태하고 또 거기서 비롯된 계급적인 대립과 투쟁, 불안이 그 사회의 지배 체제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데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쟁은 대부분 지배자와 지배자 간의 싸움이고, 진정한 국민전쟁이라는 것은 그 규모나 수에서도 적은 편이었지만 사회의 계급성이라는 것이 역사를 규정하는 힘이라는 점은 우리가 흔히 자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뚜렷하다.
이상 지나간 역사적 사실의 서술을 생략하고 몸소 겪었던 두 전쟁의 체험담을 술회하려고 한다. 여덟 살 때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에 입학했다. 이듬해 전쟁이 일어나 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매월 8일마다 칙어(勅語)를 교장이 낭독하게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문이었다.
이것이 독일•이태리•일본이 동맹하여 연합국과 전쟁을 치른 것이다. 우리나라 청장년도 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이 됐다. 38도선 이북은 붉은 군대가 주둔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김일성의 사전 준비된 전쟁도발이었다. 그러나 3년 만에 휴전이 협정되어 오늘날까지 정전상태에 이르고 있는 중이다.
세계 제2차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해 패전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6•25 참화를 딛고 개발도상국에서 산업입국의 대열에 끼게 됐다. 공업화, 산업화, IT생산 중진국으로 발돋음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나서게 됐다.
그러나 걱정이 전혀 가신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동서 각국의 나라들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에 불과한 것, 그러나 오늘날 핵보유시대에는 전투는 없고 전략만 있을 뿐이다.
비대칭전략이 사전에 서기 때문에 전쟁을 사전에 막는 수단 외는 별 도리가 없는 매우 긴박한 상태까지 갈 수가 있다.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