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인간의 물리적 욕구를 위한 창조적 노력이라면 문화는 물리적 욕망 외에 진쪾선쪾미를 추구하는 창출행위를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먹는 떡이 형이하학적 물건이라면 이 떡에 떡살을 넣어 먹는 것은 과히 문화적 행위가 아니겠는가. 먹거리, 음식의 패턴이 아닐까.
국수는 메밀가루, 밀가루 또는 감자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든가 국수틀에 뽑아내는 법도 있다. 대표적인 국수 재료는 역시 메밀이다.
냉면하면 평양이 본원지임은 주지의 사실, 그런데 왜 평양일까? 까닭은 화전(火田)에 있다.
화전은 산밭(山田)을 말하는데, 떡갈나무를 비롯한 기타 활엽수를 벌목하여 초여름에 온 산에 불을 질러 벌목된 나무를 태우고, 푸석푸석 두껍게 쌓인 낙엽재를 거름삼아 산비탈 전체에 메밀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서 메밀꽃이 밤을 밝게 한다.
이 모든 일은 화전민의 몫이다. 메밀이 영글면 가위나 칼로 메밀이삭을 잘라 마대나 기타 둥지에 담아 꽁꽁 묶어 경사진 산비탈에 굴러 떨어지기 알맞게 놓고 꼭대기에서부터 발길로 차 산 바닥에 내려가도록 산 밑에 메밀부대를 모아 쌓는다.
메밀더미를 집채만한 크기로 쌓아 놓고 하산한다. 겨울이 다가와 깊은 산에 눈이 쌓이면 발구라는 소 썰매로 쌓아두었던 메밀묶음을 운반한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 방앗간에서 메밀쌀이 하얗게 탄생하면 적당량의 포대가 만포선기차에 실려진다.
도착한 곳은 평양. 겨울 한철 팔 메밀쌀 구입에 여념이 없다. 곡간 가득히 움기 얼음이 비좁게 쌓아지면 겨울철 국수 팔 채비가 완료된다. 이리하여 차디찬 겨울철에 평양국수를 먹게 되는데 1942년도에 국수 한 그릇에 15전(錢)이었다.
국민학교 월사금이 매월 50전 했으니까,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국수(내면)는 겨울에 먹는 음식이 됐다. 그리고 먹는 법도 다르다. 젓갈 한 개로 말아 삼키듯 입안에 넣는다. 물론 씹지 않고 삼키는 것이다. 배가 벌떡 일어난다. 가까스로 끼니를 때우는 요기(療飢) 행위다.
기호(嗜好)음식으로 세인의 중지를 모으던 ‘평양냉면집’은 없어지고 물냉면, 비빔냉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냉면이 요기의 음식이 아니라 전문 기호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서울 화신백화점 건너편 ‘신신’에서 명동에 지점을 두었는데 점심때를 늦추어 가야 한 그릇 대접받을 수 있었다. 평양냉면 아니 물냉면은 맛과 영양 어느 한 군데 흠 잡을 데 없는 우리나라 고유메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도락(道樂) 가운데 으뜸은 식도락(食道樂)이라고 했다. 음식을 보고 그 나라 국민의 특성을 알게 되고 문화를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의 장기는 뭐니 뭐니 해도 발효식품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고추를 발효시키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 놀랐다고 한다.
쉽사리 눈대중으로 진미(眞味)에 도달할 수가 없다. 남의 재주 얕보지 말길.